‘루케니’의 칼에 찔린 ‘엘리자벳’이 머리를 감싸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모든 상황이 멈추고 극장은 쥐 죽은 듯 고요와 터질 듯한 긴장에 일순 휩싸였다. 오랜 길을 돌아 ‘토드(죽음)’와 마주선 ‘엘리자벳’은 드디어 진정한 자유를 찾아 그의 품에 안겼다.
‘엘리자벳’을 연기한 옥주현과 앙상블이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화음에 맞춰 마지막 넘버 ‘베일은 떨어지고’를 부르고 이내 약속된 막이 내려가자 객석에선 기다렸다는 듯 함성과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러나 그 뜨거운 환호 속엔 탄식도 섞여 있었다. 이젠 정들었던 ‘샤토드’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화제의 뮤지컬 <엘리자벳>의 히어로 김준수의 시즌 마지막 공연이 있던 지난 4일 밤.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모습이다.
객석의 환호는 이보다 더 잘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평가에도 진화와 발전을 거듭하며 완벽한 연기를 선보인 김준수에게 보내는 찬사이자 이제 그를 다시 무대 밖으로 떠나보내야 한다는 아쉬움과 서운함의 인사가 뒤섞여 있었다. 어느덧 고유명사가 된 ‘샤토드’와 작별을 고하는 팬들의 뺨에는 한 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김준수는 이번 시즌에도 최상의 컨디션으로 매 회 차마다 소름 돋는 공연을 선보였다. ‘첫공부터 막공까지’ 최선을 다했고,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오른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는 관객이 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무대를 지배했다. 서늘하고 치명적인 매력은 그를 더욱 빛나게 했다.
대미를 장식한 커튼콜은 이날 공연의 백미였다. 박은태, 민영기 등 동료배우에 이어 ‘죽음의 천사’들과 함께 김준수가 등장하자 극장은 다시한번 떠나갈 듯 함성에 휩싸였다. 넘버 ‘마지막 춤’의 하이라이트를 선보이는 동안 뒤편에는 ‘남작’ ‘백작’ ‘루돌프’ 등이 깜짝 등장해 안무를 따라하며 떠나는 황제를 최고의 예우로 배웅했다. 옥주현, 민영기 등 함께 호흡을 맞췄던 동료들과도 가볍게 포옹했다. 그동안의 수고에 대한 서로의 격려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날만큼은 다시 오르지 않을 막이 천천히 무대로 내려왔다. 김준수는 객석을 향해 인사했다. 막이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가릴 때까지. 평소보다 더 깊이, 더 오랫동안 허리를 숙였다. 팬들에 대한 진한 고마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1층부터 4층까지 전 좌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모두 좌석에서 일어나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팬들은 막이 내린 이후에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손뼉을 치며 박자에 맞춰 김준수를 연호했다.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감동과 여운이 남았는지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보였다. 미처 티켓을 구하지 못해 입장하지 못했던 팬들은 로비에서 그들의 영웅을 환송했다.
환호는 쉽사리 그칠 줄 몰랐다. 시간이 갈수록 함성과 박수소리는 오히려 더 커졌다. 기립박수는 30분간 이어졌다. ‘새 역사’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만큼 팬들의 열광은 컸다.
급기야 “오늘의 모든 공연은 종료됐습니다. 별도의 행사는 계획되어 있지 않습니다”라는 장내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누구도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이 감동의 현장을 쉽사리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듯 했다. 이 먹먹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느끼고, 더 깊이 간직하고 싶은 것 같았다.
30분간 계속된 기록적 기립박수 세례는 화장을 지우고 선글라스를 낀 김준수가 무대에 나와 짧은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끝이 났다. ‘샤토드’의 마지막 팬서비스였다. 그제야 ‘소요’는 진정됐다.
김준수는 공연을 마치며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너무나 소중한 ‘죽음’과 작별 하는 시간. 진심 어린 박수와 환호에 가슴에서 눈물이 흐르는 벅찬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세 번째 뮤지컬! 점점 무대의 존엄함을 깨닫고 더욱 여러분의 박수가 소중함을 느낍니다. 좋은 배우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강주영 withinnew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