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선택을 신의 한 수로 만드는 남자, 김준수와 함께한 마카오에서 3일.
선명하고 후텁지근할 거라 상상했던 마카오는 흐릿했고 간간이 비가 내렸다. 복잡할 거라 생각했던 도시는 골목 하나만 벗어나도 느림에 가까운 고요함이 있었다. 한자가 쏟아질 듯한 간판이 늘어선 거리에서 고개를 돌리면 유럽일까 싶은 석조 건물과 마주했다. 마카오는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었다.
마카오를 촬영지로 선택한 건 김준수다. 이번 화보 촬영은 일이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스태프들과 함께하는 휴식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라스베이거스, 해가 지지 않는 도시잖아요. 밤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더 활기차게 변하는 분위기가 좋아요.” 초등학생 때부터 가수로서 삶을 상상했던 남자, 어릴 적 상상한 그 모습 그대로 20대를 지나고 있는 스타에게 마카오는 자신이 보내고 있는 뜨거운 시간을 닮은 도시였다.
“그러고 보니 여기 오기 전까지 일 년간 한 번도 못 쉬었네요.” 일 년 전 김준수는 도쿄돔 JYJ 단독 콘서트 현장에 있었다. 3회 공연에 일본 전역에서 모인 15만 관객이 도쿄돔을 가득 채웠다. 이후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엘리자벳] 2013년 공연, 발표와 동시에 싱가포르•일본 등 8개국 아이튠즈에서 1위, 빌보드 월드 앨범 차트 5위를 차지했던 솔로 2집 앨범 [INCREDIBLE], 티켓 파워의 또 다른 증명 ‘발라드&뮤지컬’ 콘서트에 이어 김광석의 노래를 담은 창작 뮤지컬 [디셈버]까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히 아는 재능있는 아티스트가 보통의 날을 치열하게 사랑하면 얼마나 뜨거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일 년이었다. 데뷔한 지 10년. 강산이 바뀌고, 소년이 청년이 되는 시간. 김준수에게 ‘성장’이라는 단어가 언뜻 매치되지 않는 건, 그의 목적지가 단순히 수직상승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리라. 지난 10년은 김준수의 세계가 횡적으로 확장되는 시간이었다. 또 다른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전 스스로 선택한 휴식의 시간 3일. 전작 [디셈버]의 열기가 체온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던 그때, 그와 나눴던 대화 한 편을 전한다.
뮤지컬 [디셈버]가 끝이 났다. 공연을 마치고 난 소감을 말해달라.
할까 말까 고민이 많았던 작품이다. 김광석 선배님 노래를 너무 좋아하지만 뮤지컬에서는 어떨지 걱정도 있었고 주크박스 뮤지컬에 대한 편견도 있었다. 예전에 창작 뮤지컬을 했을 때 힘들었던 기억에 두렵기도 했다. 송스루(song through)가 아닌, 대사가 많고 연기를 해야 하는 뮤지컬이기도 했다. 하지만 잘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뭔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뮤지컬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하게 되었다. 끝나고 난 지금, 뮤지컬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디셈버]는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도 대사가 계속 바뀌고 여러 가지로 힘들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과정이 너무 즐거웠다. 원래 다른 뮤지컬은 끝날 때쯤 되면 너무 힘들어서 당분간 뮤지컬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디셈버]가 끝났을 때는 바로 다른 작품에 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뮤지컬 배우로서 편견도 깨졌고.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
스스로 송스루가 아니면 아직 손댈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뮤지컬도 물론 연기를 하지만 노래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왜 드라마 연기를 안 하냐”고 물으면 내가 제일 자신있는 것, 잘하는 게 음악이라 뮤지컬이 더 편하다는 말을 하곤 했다. 연기에 치중된 뮤지컬은 서른이 넘어서 해야겠다는 생각만 막연하게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전을 하게 된 거다. 편견과 달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창작 뮤지컬이라서 특히 만들어가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다.
만들어가는 과정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참여했나.
라이선스 뮤지컬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반영이 어렵다. 장진 감독님은 배우들의 의견을 많이 수렴해주셨다. 엔딩 같은 경우도 원래는 이연이를 옥상에서 안으면서 그냥 끝나는 거 였는데, 이연이가 “또 봐” 그러면 지욱이 “우리 또 봐”라고 말하는 대사를 넣자고 제안했다. 마지막이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아리송하다는 의견들이 있어서 함축적인 말 한 마디가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았다. 의견을 냈더니 흔쾌히 받아주셨고, 관객들이 그 대사로 극을 더 쉽게 이해하고 좋아해주시더라.
[디셈버]의 연기는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부족한데… 그래도 내가 울 때 같이 울고, 웃을 때 함께 웃을 수 있는 정도는 끌어냈다고 본다.
드라마 연기에 도전할지 자신의 가능성을 좀 보았나.
궁극적으로 뮤지컬 연기와 드라마 연기는 다르다. 뮤지컬 연기를 잘한다고 드라마 연기를 잘하는 게 아니고,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으니까 도움은 되었을 것이다. 이번 연기로 드라마를 할 수 있겠다, 없겠다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언젠가 어울릴 만한 역할이 있다면 해보고 싶은 정도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디셈버]는 40~50대 관객의 비율이 높았다. 어떤 부분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보나.
김광석 선배님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자기 세대 이야기여서이지 않을까. 인생에서 처음으로 무대에서 아저씨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항상 여자분들 웃음만 들었지, 아저씨들이 막 호탕하게 “허허허” 웃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너무 새롭고 신기했다.
김광석과 창법이나 목소리가 너무 달라서 고민이 많았겠다.
아예 장르적으로 뮤지컬 스타일로 편곡되어 있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약간 70~80년대 감성이 있다. 어머니가 노래를 굉장히 잘하시는데 어릴 적부터 이미자, 패티김 이런 분들 노래를 하도 듣고 자라서 위화감 없이 부를 수 있다. 오히려 요즘 스타일 트렌드를 못 맞추겠다. 기계음, 그거 잘 못하겠다.
[디셈버]는 가수 김준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좀더 옛날 감수성을 받을 것 같기도 하고. 아버지 세대는 이랬구나 하는 걸 다시 한 번 느꼈고. 지금 보면 유치하지만 진실된 사랑이 예뻐 보였다.
옛날 노래가 진짜 사랑을 안다.
맞다. 젊은 세대들이 어떻게 보면 더 불쌍하다. 옛날에는 휴대폰이 없기 때문에 불편했지만 반대로 없기 때문에 뭔가 더 애틋한 감정이 있었다.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김준수의 선택은 확실히 다르다”는 얘기가 있다. [모차르트!] [천국의 눈물] [엘리자벳] [디셈버]까지 작품 선택이 도전적으로 느껴진다. 자신감이 있다는 반증으로도 보이고. 주로 어떤 작품을 선택하나.
무모한 작품들?(웃음). 사실 [모차르트!]는 신인이 첫 뮤지컬로 선택하기엔 노래가 너무 힘든 작품이다. 지금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건, 현존하는 뮤지컬 중에 테크니컬적으로 가장 힘든 작품이 [모차르트!]라는 거다. 모든 음악가들이 인정한다. 당시에 뮤지컬 자체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뭘 몰라서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보통 주연이 50%만 끌고 가도 비중이 큰 건데, [모차르트!]는 80%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무모했다. [천국의 눈물] 역시 두 번째 출연 작품에서 창작 뮤지컬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선배들도 말렸던 작품이다. [엘리자벳]도 ‘죽음’이라는 초현실적인 캐릭터를 표현해 내야 했기에 엄청난 도전이었다. 그 역할을 하겠다고 했을 때 죽음 역할은 정말 섹시한 남자가 해야 한다고, 너무 안 어울린다고 욕도 먹었다.
무모한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상되는 선택은 하기 싫다. 예를 들어 5월에 앨범을 낼 것 같다고 팬들이 예상을 하거나, 다음에는 이런 작품을 하겠지 하면, 다른 작품에 들어가고 싶다. 그런 성향이 좀 있다(웃음).
무대에서 표현해내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항상 놀랍다. 그런 능력은 어디서 비롯된 것 같나.
그냥 그 분위기랑 가사를 생각한다. 지금 이 배경과 나의 모습, 그리고 음악, 가사 내용, 스토리 그런 걸 복합적으로 생각해서 하는 것 같다. 쉽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동방신기 때도 슬픈 노래는 울면서 불렀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뮤지컬 할 때 연출자분들이 장점이라고 얘기해주시더라.
어릴 때 공상이나 상상을 많이 하는 아이였나 보다.
맞다. 엄청 했다. 상상으로 살았다. 초등학생 때 부터 2시간 동안 콘서트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장면까지 상상을 했다. 화장실에서 노래를 하면서 상상 속에 살았다. 지금도 그렇다. 예를 들어 이번 화보도 마카오 사진을 보면서 분위기를 상상했다. 자연스럽게 그냥 습관처럼 하는데 거의 맞아떨어진다.
뮤지컬 무대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
다른 배우들에게는 관객들의 박수겠지만 나에겐 그것만은 아니다. 콘서트에서도 박수를 받으니까. 가장 큰 매력은 그 배역으로 살아보는 것, 그 배역의 감정으로 노래하는 것. 시아준수가 노래하는 게 아닌, 배역의 감정으로 노래하는 것이다.
뮤지컬을 평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면.
매번 느끼는 것 같다.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해준 게 뮤지컬이고, 불공정하지 않게 나를 봐주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남우주연상도 주시고. 뼈를 묻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뮤지컬계에서 스스로 어떻게 포지셔닝하고 있나.
뭐라고 해야 할까. 뮤지컬 작품을 고르는 기준을 물어보면 항상 음악이라고 답해왔다. 실제로도 그랬고. 그래서 ‘김준수가 고른 뮤지컬은 적어도 음악은 좋다’는 믿음은 있는 것 같다. 시나리오, 볼거리, 작품성 다 떠나서 음악은 좋을 거라는 확신.
뮤지컬을 시작하고 생긴 직업병이 있다면.
직업병까지는 아닌데 잠을 자려고 노력을 한다. 동방신기를 나온 후에는 잠을 자려고 노력을 해본 적은 없었다. 다음 날 어떤 스케줄이 있어도 잠을 무조건 자야 된다는 압박감까지는 없었는데, 뮤지컬 전날엔 최소 10시간은 잔다는 나만의 원칙이 생겼다.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뮤지컬에서 일종의 책임감 같은 거다.
목소리와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목소리 관리는 공연 전날 잠을 잘 자면 되는 것 같다. 체력을 위해서는 나쁜 걸 안 한다. 예를 들어 담배 같은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된다.
하고 싶은데 안 하는 건가.
반반이다.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못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고.
[엘리자벳] 이후로 외모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 패션 세계에 눈을 뜨고 달라진 게 있다면.
옷 사는 데 돈을 엄청 쓰게 되었다. 모든 분더 숍, 꼬르소 꼬모에서 나를 찾는다. 신상이 나오면 문자가 날아온다(웃음). 사실 패션의 중요성을 몰랐다. 관심도 없었고. 가수가 노래 잘하면 됐지 잘생겨서 뭐해, 옷 잘 입어서 뭐해 그럼 내가 모델했지 그런 고지식한 생각을 했다. 눈을 떴다기보단 엔터테이너로서 패션도 그 일부라는 걸 알게 된 거다. 당시에 몇 년 만에 다이어트를 했고, 그 시점에 잡지 화보를 찍었는데,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이 나왔다. 팬들이 정말 좋아했는데 만날 노래로 팬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런 걸로도 즐겁게 해줄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고도 미안했다. 허구한 날 노래만 했을 때는 팬이 안 되던 분들이 좋아해주기도 한다. 외모를 가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주얼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얘긴데, 솔로 앨범 [타란탈레그라]의 골반 돌리기를 보고 뒤늦게 팬이 된 사람도 많다. 유연한 골반은 타고난 것인가, 피나는 연습의 결과인가.
(매니저: 여자 기자들이 지어준 별명이 있다. ‘화골 김준수선생’. 화려한 골반 김준수 선생이다.) 으하하하하, 뭐라는 거야. 전부터 조금씩 하긴 했다. 그런데 뭔가 창피함이 너무 많았다. 옛날부터 잘할 수 있었지만 창피해서 그냥 맛만 살살 보여 줬는데. ‘타란탈레그라’ ‘언커미티드’까지 하도 돌리다 보니까 별로 안 부끄러워진 것뿐이다. 미국 댄서들과 콜라보를 자주 해서 골반춤이 많이 들어간 이유도 있다. 그리고 엉덩이가 약간 튀어나 왔는데 그것 때문에 좀더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SNS를 보면 집 사진이 많이 올라온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더라.
엄청 많다. 사실 요즘 옷보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더 많다. 얼마 전에 이사를 했는데 인테리어를 직접 해서 간 건 처음이다. 인테리어로 집안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사랑의 집 짓기’도 후원하고 있는데. 집이나 공간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공간은 나에게 결국엔 돌아가는 곳이다. 그런데 어려운 이들을 위해 집 짓기를 하게 된 이유는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형식을 고민한 결과다. 돈으로 평생을 책임질 수 없으니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그 터전을 만들어주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한다. 캄보디아에 학교를 세운 이유도 같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를 해서 스스로 직업을 찾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나눔에 대해 생각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예전 소속사를 나오고 나서부터다. 예전에는 감사할 게 없었다. 앨범이 나오면 1등을 하고, 상을 받고, 콘서트 하면 매진이 되고 어딜 가나 대우 받으니 모든 게 당연했고 오히려 불행을 찾았던 것 같다. 당연한 게 없는 지금은 모든 게 감사하다. 방송 활동 못하는 지금 상황이 불행할 수 있지만, 가수를 아예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솔로 앨범을 발표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콘서트와 뮤지컬 무대에 설 수 있는 게 감사하다. 그 일을 계기로 금전적으로 나눌 수 있을 때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을 JYJ멤버 모두 하게 되었다.
지금 오랜만의 휴식을 갖고 있다. ‘김준수가 즐겁게 사는 법’은 무엇인가.
일하고 쉬고 또 일하고 쉬고. 이게 즐겁게 사는 방법이다. 옛날엔 일일일일이었으면, 지금은 일한 만큼 쉬고, 쉴 때는 좋은 것만 접하려고 한다. 돈을 아무리 벌어도 그 자식이 행복한 거지 정작 돈 번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고 하더라. 못 놀고, 못 즐기고, 못 사고 그런 삶이 제일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한 만큼 나에게 상을 주는 것이 힐링이 된다. 사는 이유 같기도 하고.
예전 삶과 비교한다면 지금 얼마나 더 행복한 것 같나.
모든 일에 있어서 의견을 나누며 진행할 수 있다는 것. 무슨 일인지 알고 스케줄을 나가는 것. 그게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예전에는 무조건 해야 했으니까. 지금은 어느 정도 스스로 책임감이 묻어 있는 활동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되었을 때 누굴 탓할 수도 없지만 잘 이루어졌을 때 성취감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내 삶을 사랑하고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채워지는 것 같다.
지금까지 김준수는 몇 퍼센트나 보여줬을까.
절반 보여준 걸로 하자. 20대에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남자는 서른부터라고 하니까 나의 50%는 30대부터 보여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