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계에서 최고의 티켓 파워는 단연 김준수다. 2010년 뮤지컬에 처음 도전한 <모차르트!> 때부터 새로운 뮤지컬 스타의 등장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국내에서는 인지도 낮은 작품이던 <모차르트!>였지만, 김준수의 캐스팅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의 출연 분 티켓이 곧바로 매진됐다. <모차르트!> 이후 이러한 현상은 그가 출연하는 모든 작품에서 반복됐다. '예매 몇 분 후 매진'이 단골 홍보 문구로 쓰였고, 티켓 예매처 서버가 다운된 것은 흔한 일이었다. 한 작품의 흥행에 성패를 좌우할 만큼 그의 티켓 파워는 대적할 배우가 없다. 그래서 그의 출연 자체가 큰 관심을 모았다. 2010년 <모차르트!> 이후 출연한 작품은 네 작품. 한 해 평균 두세 작품, 많게는 대여섯 작품에 출연하는 뮤지컬 배우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김준수는 매우 신중히 작품을 선택해왔던 셈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 연말 <디셈버> 공연을 마치고, 비교적 짧은 공백기를 보낸 후 다선 번째 작품으로 <드라큘라>를 선택했다.
김준수만의 드라큘라
"디셈버를 하고 나서 뮤지컬이 더 좋아졌어요. 보통은 뮤지컬하고 나면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당분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디셈버>를 끝내고 나서는 신기하게 바로 작품을 하고 싶더라고요. 디셈버의 지욱은 현실적인 캐릭터라 제한이 있었는데, 다음 작품은 캐릭터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차에 만난 게 <드라큘라>였죠. 작품을 선택할 때는 음악을 가장 우선적으로 보는데 이 작품의 음악이 너무 좋더라고요. 영어와 독일어 넘버를 들었는데 가사가 확실히 들리진 않았지만 드라마틱하고 드라큘라가 얼마나 매력적인 인물인지 알 수 있었죠."
데뷔작 모차르트에 이어 천국의 눈물, 엘리자벳, 디셈버, 그리고 드라큘라다. 이번 선택은 이전의 작품들로 미루어볼 때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김준수는 창작뮤지컬과 라이선스 뮤지컬을 공평하게 출연해왔다. 창작뮤지컬 <천국의 눈물>에서는 월남에 파병되어 베트남 여성과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는 한국군을, <디셈버>에서는 대학시절 수줍게 키워갔던 사랑을 잃고 난 후, 그녀의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안무가 지욱을 연기했다. 창작뮤지컬에서 현실에 기반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 보다 김준수의 가치가 드러나는 것은 일상적이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할 때다. 천재성을 지닌 예술가 모차르트 역에서는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과 주목 때문에 한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속박당하는 예술가의 고뇌를 진정성 있게 그려냈다. 아이돌 스타였던 김준수의 고민과 한 시대의 천재 예술가였던 모차르트의 고민이 절묘한 접점에서 만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연기를 보여줬다는게 일반적인 평이다.
그가 아이돌 스타의 이미지를 극복하고 뮤지컬 배우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은 것은 <엘리자벳>의 토드 역을 맡으면서다. 죽음을 상징하는 관념적인 인물인 토드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허스키한 미성이 신비감을 주면서 김준수만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선보였다. 뮤지컬에 출연한 이후 매해 뮤지컬 시상식에서 팬들이 선정하는 인기상을 수상해오다가, <엘리자벳>의 토드 역으로 남우주연상을 받는다. 팬덤의 지지뿐만 아니라 배우로서도 공연계의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모차르트나 토드를 맡았을 때 처음에는 다들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어요. 토드를 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묵직한 느낌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었죠. 나중엔 오히려 정형화되지 않아서 초월적인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도움이 됐다고 평가받았어요. 뮤지컬에서는 허스키한 목소리를 안썼는데, 이 작품만큼은 일부러 더 활용하려고 했고, 그런 보이스가 초월적이고 신비한 느낌을 주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런 김준수가 <드라큘라>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정이다. 이전까지 그가 보여줬던 장점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이자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드라큘라>는 브람 스토커의 원작 소설을 뮤지컬로 옮긴 작품으로, <지킬 앤 하이드>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을 맡았다. >김준수는 <천국의 눈물>에서 이미 프랭크 와일드혼의 작품을 경험한 바가 있다.
"<천국의 눈물>의 음악에는 서정적인 아름다운이 있어요. 첫사랑, 이별 등의 감정을 대변해주는 노래들로 이루어졌죠. 반면 <드라큘라>의 음악은 죽음을 관장하는 캐릭터를 표현한 만큼 훨씬 웅장하고 강렬해요. 미나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팝 발라드 같은 아름다운 선율이 사용되기도 하고요."
죽음을 지배하는 드라큘라의 캐릭터 역시 그에게는 낯설지 않다. 음악적으로나 연기적으로도 가장 호평을 받았던 <엘리자벳>의 토드가 바로 죽음을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드라큘라 백작은 신을 위한 전쟁에 참가했지만, 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후 발견한 건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이었다. 신을 부정하며 저주와 같은 영생을 살아가는 드라큘라 백작은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죽음이라는 관념을 형상화한 토드보다는 인간적인 갈등이 드러난다.
"토드와 드라큘라의 공통점이라면 죽음을 넘어선 초월적인 존재라는 점이에요. 토드가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느끼는 두려움, 신비스러움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면, 드라큘라는 좀더 마성적이죠. 그는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존재니까요.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을 숭배하게 만드는 절대악이에요. 강하고 잔인하고 더 절대적이죠. 그러나 둘 다 사랑 앞에서는 약한 존재예요. 드라큘라가 더 잔인한 인물이지만 좀더 순정적이라고 할까."
토드가 엘리자벳을 죽음으로 구원하는 존재라면, 드라큘라는 그와는 반대로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사랑을 지켜내는 인물이다. 드라큘라가 사랑을 지키는 방법이 파멸밖에 없기 때문에 이들의 사랑은 더 절실하고 각별하게 느껴진다. 영생의 축복과 고통을 지닌 절대자이면서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비운의 인물, 드라큘라! 김준수는 이 매혹적인 비운의 인물을 자신만의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작품과 캐릭터 분석에 매진하고 있다.
아이돌 스타에서 뮤지컬 배우로
김준수는 그의 출연만으로도 작품의 흥행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배우다. 엄밀히 그것은 유난히 뜨거운 그의 팬덤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수많은 아이돌 스타들이 뮤지컬에 출연했지만 그만큼 관객들을 동원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에 대한 믿음만으로 뮤지컬이라는 낯선 장르에 도전하는 팬들이 무척 많다. 이중에는 김준수의 공연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역을 맡는 다른 배우의 공연을 보거나, 때로는 그가 출연하지 않는 뮤지컬에도 흥미를 느끼는 팬들이 늘어가고 있다. 흔히 스타 마케팅으로 새로운 관객의 유입과 확대를 말하는데, 그런 현상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멀리 해외에서 그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해외 관객들도 무시할 수 없다. 김준수는 한 스타가 시장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어느정도인지 가늠하게 해주는 사례일 것이다. 뮤지컬에서 그의 영향력이 아이돌 스타로서 쌓아온 팬덤에 기인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김준수는 무대에서도 뛰어난 기량으로 그가 왜 스타인지를 증명해냈다. 뮤지컬 배우로서 자리를 확고히 잡아갈 수 있었던 것은 뮤지컬 관계자조차 인정하게 만든 그의 노력 때문이다. 그는 무대에서 팬덤에 기대지 않고 철저히 실력으로 일반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뮤지컬 무대는 평생을 해도 편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3시간 동안 이어지는 라이브 무대고, 매번 대사와 음악의 합을 완벽하게 맞춰야 하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해도 언제나 막이 오르기 전까지는 긴장하게 돼요. 가수활동을 할 때도 성대에 무리가 가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했거든요. 뮤지컬을 하면서 하나의 습관이 더 생겼어요. 공연 전날 반드시 잠을 푹 자둔다는 거예요. 그래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좋은 무대는 관객들과의 약속이자 의무니까 저를 채찍질하게 되죠."
이제 다섯 번째 뮤지컬에 서는데도 여전히 무대에 서는 것이 긴장되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김준수는 아이돌 스타로서, 그리고 뮤지컬 배우로서도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다.
수만 명이 열광하는 콘서트 무대에서 단련된 경험은 뮤지컬 무대에 섰을 때도 큰 도움이 된다. 그는 돋보이기 위해 화려하거나 과장된 연기를 하지 않지만 관객들을 집중시키는 힘이 뛰어나다. 관객들로 하여금 작은 소리까지도 귀 기울이게 만들고,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완전히 그 캐릭터가 되어서 무대에 서려고 하는 것 같아요. 노래를 부를 때도 그 캐릭터가처한 상황이나 감정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감성을 실어 부르려고 신경 쓰고요."
그는 무리해서 캐릭터가 되기보다는 자기 안에서 캐릭터를 받아들이고 찾아낸다. 그래서 그의 연기는 자연스럽고 진정성이 느겨지면서도 독특함이 살아있다.
이러한 배우의 재능은 라이선스 뮤지컬뿐만 아니라 창작뮤지컬에서도 두각을 보인다.
"라이선스 뮤지컬은 이미 해외에서 검증된 작품이어서 시스템도 안정적이고 캐릭터를 소화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창작뮤지컬은 연출, 스태프, 배우 모두가 함께 만드는 공동 작업 같아요. 각자의 역할뿐만 아니라 함께 고민하면서 만들어가야 하는 것들이 많으니까 시행착오도 많죠. 그래서 부담감도 훨씬 크고요."
지금까지 그가 출연한 다섯 작품 중 두 작품이 창작뮤지컬이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부족한 창작뮤지컬에 인지도에서는 절대 갑인 김준수의 출연은 큰 힘이 된다.
동방신기에서 JYJ로 팀을 나누고 소속사와의 문제로 활동이 위축되었던 시점에 그는 뮤지컬을 만났다. 비록 순탄치 않은 상황에서 만난 또 다른 길일지라도 그것은 뮤지컬계로서도, 그에게도 다행이고 행복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점차 실력이 늘어가고 장르의 매력을 알아가면서 점점 뮤지컬에 빠져드는 자신을 느꼈다.
"뮤지컬을 하면서 다시 공평하고 공정하게 평가 받을 수 있어서 제게 무척 특별한 일이 되었어요. 또 솔로 앨범을 낼 때도 음악 스타일에 영향을 주는 등 제 활동 전반에 영향을 끼쳐요. 저는 정말 뮤지컬이 좋아요.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공연 예술은 없는 것 같아요. 정말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작업이에요."
그의 '뮤지컬앓이'는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다. 드라큘라를 거쳐 또 어떤 무대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그를 지켜보는 우리 역시 설레고 기대된다.
글_ 박병성 (월간「더뮤지컬」편집장)
예술의 전당 월간정보지 2014년 7월호 (vol.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