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팬들의 기대를 한껏 모으던 < 드라큘라 > 가 드디어 뚜껑을 열었다. 김준수가 누구인가. 홍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어느 중형 공연기획사를 대형 공연기획사로 발돋움하게 만들어주었던 장본인 아니던가. < 드라큘라 > 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김준수의, 김준수에 의한, 김준수를 위한 공연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제 그 까닭을 살펴보도록 하자. 김준수가 < 디셈버 > 처럼 일상적인 캐릭터보다는 범상치 않은 존재를 연기할 때 더 아우라를 뿜어낸다는 건 < 엘리자벳 > 에서의 죽음과 같은 초자연적인 연기를 통해 뮤지컬 팬들에게 증명된 바 있다. 알다시피 < 드라큘라 > 의 주인공은 흡혈귀다.
▲ 드라큘라를 연기하는 김준수
< 엘리자벳 > 에서 오스트리아 황후를 죽음으로 자꾸만 손짓하고 유혹하던 김준수를 트랜실바니아의 흡혈귀와 연결시키는 건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1막 초반에서 면도칼에 묻은 피를 핥아먹는 김준수는 그가 초자연적인 존재를 연기할 때 보다 비범한 아우라는 발휘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빼앗고 싶지 않은 드라큘라
드라큘라가 사랑하는 옛 여인을 잊지 못하다가 그녀와 똑같은 미나를 만나 다시금 사랑의 언약을 맺는다는 뮤지컬의 설정은 드라마 < 별에서 온 그대 > 에서 도민준이 예전에 사랑하던 여인과 똑같이 닮은 천송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과 비슷하다. 미나가 연인 엘리자베스와 판박이처럼 닮은꼴이 아니었다면, 드라큘라가 먹잇감인 인간과 사랑에 빠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실 뮤지컬 < 드라큘라 > 는 영화 팬이라면, 아니 문학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를 펼쳐놓고 있다. 뮤지컬은 새로운 재해석을 시도하지 않았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만든 동명의 영화에서는 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던 드라큘라가 반기를 들 수밖에 없는 사연을 초반에 열거한다면, 뮤지컬은 이러한 드라큘라의 사연을 1막 중반에 미나에게 설명한다. 이런 전개는 드라큘라의 서사를 모르는 일반 관객에게 그가 어떤 아픔을 가진 캐릭터인지 초반에 대놓고 제시하는 것보다는 효율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들어준다.
미나는 이미 약혼자가 있다. 드라큘라가 400년 전에 아픈 사랑을 했던 로맨티스트라 할지라도 미나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한순간에 배신하고 드라큘라를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보니 미나는 약혼자와 드라큘라 사이에서 이도 저도 못하는 갈대 같은 여자가 된다.
김준수가 연기하는 드라큘라는 어떤 흡혈귀일까. 사랑하는 여인에게 자신의 사랑을 강요하기보다는, 자신의 사랑에 설득되기를 기다리는 쪽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김준수의 드라큘라는 참고 또 참는다. 1막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오기까지 초조해하지 않고 재촉하지 않는다. 미나의 마음 문이 충분히 열릴 때까지 기다려준다.
그렇다고 드라큘라가 기다리기만 하는 사랑바라기의 모습만 보여주지는 않는다. 2막에서는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마침내 미나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다. 미나를 연기하는 조정은이 김준수의 검은색 상의를 벗기는 장면은 마음의 문을 여는 데 성공한 드라큘라의 사랑의 결실을 보여준다.
이 뮤지컬의 킬링 콘텐츠는 귓가에 흥얼거리는 넘버 '러빙 유 킵스 미 얼라이브(Loving you keeps me alive)'다. 가사 일부만 보자. "그대를 처음 본 순간 숨조차 쉴 수 없었어. 우리의 인연은 시간을 넘어 함께 할 운명, 다시 내게 돌아와 춤을 추어요. 새벽을 향하여" 이 넘버를 듣던 관객 일부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드라큘라가 여심을 쫄깃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은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의 세계로 발 딛게 만드는 걸 한사코 거부한다는 점이다. 만일 드라큘라가 미나를 흡혈귀로 만들면 영원히 함께 살 수는 있겠지만 사랑하는 여인은 신의 저주를 받는 귀신이 되고 만다.
사람 피를 빨아먹는 귀신이라고 해서 마냥 비난할 대상이 아니다. 사랑이 제일 중요하지만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행복을 뺏고 싶어하지 않는 김준수의 연기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자신의 사랑을 추구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일정 부분 담보로 잡는 게 사람의 본성인데, 그의 진정한 행복이 무언가를 헤아려주는 드라큘라를 통해 관객은 대리 만족할 수 있다.
프리뷰라 아직은 보완해야 할 점도 있다. 드라큘라와 미나의 클라이맥스 장면은 앞 열 관객이 아니고서는 시야를 확보하기 힘들다. 김준수의 국외 팬이 적지 않은 만큼 < 카페인 > 처럼 일본인 관객을 위한 자막 설치는 시급해 보인다. 관객의 우레 같은 박수 소리에 보답이라도 하듯, 김준수는 아주 독특한 커튼콜의 시작과 끝을 선보였다. 공연장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라.
http://media.daum.net/entertain/star/newsview?newsid=2014071809150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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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100마디 말이 필요 없다. 천의 얼굴을 가진 김준수 '드라큘라'의 실체
http://www.jungcultur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60
물 오른 김준수의 기량은 명불허전이다. 김준수는 '자신의 사랑 '엘리자벳'에 대한 확신을 이토록 진실되고 섬세하게 담아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세밀한 심리묘사를 했다. 그가 왜 신을 버릴 수 밖에 없었는지가 그 장면 하나로 설득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의 그림자와 웃음을 잃어버린 현재가 대조적으로 강조되며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가장 아름다운 입맞춤'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그 장면 하나로 티켓 값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