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습하지 않는 캐릭터 연구로 초자연적 존재 차별화 성공
▲김준수는 답습하지 않는 캐릭터 연구로 ‘토드’와 ‘드라큘라’라는 초자연적 존재를 차별화하는데 성공했다.(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오디뮤지컬컴퍼니)
지난 5월, 김준수가 뮤지컬 <드라큘라>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뮤지컬 천재’라는 수식어를 꿰차며 ‘한국뮤지컬대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만큼 안정적인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만큼, 브로드웨이 라이선스 초연작이지만 무난하게 소화해 낼 거라는 낙관론과 함께 앞서 출연했던 뮤지컬 <엘리자벳>의 ‘토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비관론이 그것이었다.
낙관론을 제기하는 측에서는 김준수가 초연 작품이 강한데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드라큘라’라는 캐릭터를 능숙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전작 <디셈버>처럼 허술한 스토리의 작품을 혼자 끌어갈 수 있는 역량이 확인된 만큼, 이번에도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영역을 더욱 확장하며 잘 해 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이번이 첫 출연인 김준수가 과연 그 부담을 이겨낼 수 있을지 관건이었다. 더구나 ‘드라큘라’라는 인물은 이미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을 통해 대중이 숱하게 접했던 캐릭터였기 때문에 그가 어떤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도 주목거리였다. 게다가 원작은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흥행에 참패했던 졸작이었다.
워낙 임팩트가 강했던 ‘토드’의 이미지를 벗어내는 것 역시 그의 몫이었다. ‘토드’ 역을 처음 맡았을 때만 하더라도 그가 판타지적 역할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드물었지만, 그 이후로는 그에게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이미지가 탄탄하게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뒤, 뮤지컬 <드라큘라>의 막이 오르자 평단과 관객은 일제히 “역시!”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는 ‘토드’를 답습하지 않았다. ‘드라큘라’와 ‘토드’라는 초자연적 캐릭터를 그려내면서도 확연한 차별화에 성공함으로써 자신을 향한 일부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보기 좋게 입증했다.
‘토드’를 통해 마성의 매력을 보여주었던 김준수는 ‘드라큘라’라는 상상 속 캐릭터 역시 새로운 해석으로 빚어냈다. 그는 자신이 ‘토드’를 통해 세웠던 난공불락 같은 판타지 캐릭터의 벽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드라큘라’라는 또 다른 아성을 구축했다. 김준수는 ‘드라큘라’라는 막연한(혹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캐릭터를 관객이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도록 호흡을 불어넣었다.
‘토드’와 ‘드라큘라’는 비슷한 요소를 지녔지만, 김준수를 통해 전혀 다른 인물로 묘사됐다. ‘토드’의 사랑이 소유와 집착, 질투에 가까웠다면, ‘드라큘라’의 사랑은 지고지순하다. ‘토드’가 무겁고 음산한 검은빛이라면 ‘드라큘라’는 조금은 거칠더라도 순백의 자연스러움에 유사하다. ‘토드’의 목적이 죽음 그 자체였다면, ‘드라큘라’는 오히려 사랑하는 여인과의 영원한 삶이다.
한층 성장한 김준수의 내면연기도 두 캐릭터를 더욱 다변화해 나타냈다. ‘토드’는 죽음 자체의 형상을 의인화했지만, ‘드라큘라’는 본래 인간이었기 때문에 인간이 갖고 있는 갈등과 아픔이 젖어 있다. ‘엘리자베사’와의 사랑과 행복 그러나 죽음의 나락 앞에서 절규하며 분노하는 ‘드라큘라’의 모습은 애절한 인간 그 자체를 보여준다. 그러나 신을 저주하며 뱀파이어가 되어가는 모습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호러메이즈를 연상시킨다. 짧은 순간이지만, 사랑의 달콤함과 죽음의 비통함이 서로 다른 울림으로 객석에 전달된다.
그런 면에서 ‘드라큘라’는 ‘토드’에 비해 진일보하고 입체적인 연기를 요구하는 캐릭터다. 냉철하고 강력한 ‘드라큘라’의 모습과 사랑을 위해 뱀파이어의 삶을 선택한 슬픔을 간직한 인물로 동시에 드러났다. 김준수는 ‘드라큘라’ 내면에 숨겨진 아픔을 장대한 드라마 속에 효과적으로 녹여냄으로써 이러한 연출의 요구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또한 관객에게는 흡혈귀라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의 부각이 아닌, ‘미나’라는 여인을 잊지 못하고 찾아 헤매는 순애보 돋는 인물을 그려냄으로써 뮤지컬 <드라큘라>를 단순한 괴기나 공포물에 그치지 않고 애틋한 러브스토리로 완성시켰다.
“김준수의 라이벌은 김준수 뿐”이라는 호평을 이끌어내며 뮤지컬 배우로서 진일보하고 있는 김준수의 열연을 지켜볼 수 있는 뮤지컬 <드라큘라>는 오는 9월 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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