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최초 스페셜 무대인사 ... 커튼콜의 새로운 진화 '좋은 예'
2014.09.05 10:09
▲김준수 ‘막공’ 커튼콜엔 놀라운 무언가가 숨어있다. 4일 밤 <드라큘라> 마지막 공연에서도 그는 팬들에게 깜짝 놀랄 선물을 했다.(사진제공=오디뮤지컬컴퍼니)
굳게 닫혔던 관 뚜껑이 열리자 이내 빨간머리의 그가 핏빛 코트를 입고 다시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관객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시에 함성을 쏟아냈다. 예술의전당 4층까지 단 한 좌석도 빼놓지 않고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마치 누가 더 크게 박수를 치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갈채를 토해냈다. 그야 말로 ‘열화와 같은 성원’이었다.
이젠 이정도 데시벨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법도 한데 대극장의 천정을 뚫어버릴 것 같은 기세에 무대 위 배우들의 동공이 일순간 확장됐다. 몇몇은 놀랍다는 듯 입을 가리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팬들이 내뿜는 에너지는 그들이 좋아하는 배우의 그것만큼이나 폭발적이었다.
그가 두 손을 들어 화답했다. 허리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했다. 평소보다 한 뼘은 더 깊어 보였다. 옆에 서 있던 배우들과도 그간의 수고를 격려하듯 가볍게 목례를 나눴다. 그런 그에게 동료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진한 정이 들었던 것일까. ‘뱀파이어 슬레이브’ 등 몇몇 배우와 앙상블은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들숨을 크게 한번 들이킨 그가 감회어린 표정으로 잠시 객석을 둘러봤다. 4층 마지막 좌석까지 시선을 맞추려는 듯 한 명 한 명 꼼꼼하게 응시했다. 팬들의 표정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작별을 고해야 하는 건 배우뿐 아니라 관객도 마찬가지였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팬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의 눈동자 역시 잠시 반짝였다. 그러나 자상한 ‘오빠미소’도 잊지 않았다.
그에게 마이크가 건네졌다.
“오늘로서 저의 ‘드라큘라’는 끝났네요”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처음에 프리뷰 했을 때는 언제 30회를 하나 하는 생각에 힘들었는데, 어느덧 ‘막공’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캐릭터의 작품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신춘수 대표와 오디뮤지컬컴퍼니 식구들에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여기 계신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관객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깜짝 놀랄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솔직히 ‘드라큘라’의 노래들이 저와 음역대가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노래의 키를 전체적으로 다 올렸습니다. 사실 그건 힘든 작업인데, 원미솔 음악감독과 오케스트라가 저를 위해 두 가지 버전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힘들었을 텐데,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는 첫 연습이 시작되고, 2주간은 대본 수정만 했을 정도로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힘을 모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썩 괜찮은 작품이 만들어진 것 같아 뿌듯하다”고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의 수고에 조금은 어깨를 으쓱할 만하건만, 이 예의바른 배우는 “그건 모두 여기 계신 여러분의 덕택”이라며 완성도의 공을 관객의 애정으로 돌렸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허리를 숙여 인사한 그는 이제 이 작품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망토를 휘날리며 관으로 퇴장했다. 물론 ‘사랑의 총알’도 잊지 않았다(이날은 특히 다연발 총이었다). 그렇게 지난 30회 동안 수많은 관객을 울리고 웃겼던 ‘샤라큘라’는 관객의 작별인사를 받으며 안식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후 놀라운 장면이 연출됐다. 배우들을 비추던 조명도 꺼지고, 객석과 무대를 가르는 막이 내려오고,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끝나도 4층까지 가득 찬 객석의 관객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콘서트처럼 그의 이름을 연호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재등장을 기다리는 팬들의 ‘약속된 플레이’였다. 오직 김준수의 막공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무대 한 켠에서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막공 스페셜 무대인사) 당연한 게 되었군요”라며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그러면서 또 한 가지, 놀라운 숨은 일화를 공개했다.
“사실 처음 예술의전당에서 이 작품을 공연한다고 했을 때 저희 회사에서 문의했던 게 시작도 안했는데 막공 때 이걸해야 한다고, 꼭 가능할 수 있도록 부탁드렸는데, 이렇게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문득 지난해 <엘리자벳>의 마지막 공연 커튼콜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그날도 9월 4일이었다. 정확하게 1년 만에 그는 예술의전당에 서로 다른 작품의 주인공으로 막공 무대에 선 것이다.
당시 공연장 측이 김준수의 스페셜 무대인사를 허락하지 않아 그는 대기실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영문을 몰랐던 팬들은 30분간이나 그를 기다리며 본의아니게 ‘비공인’ 국내 최장 커튼콜 기립박수 기록을 세워야 했다. 당시 아쉽게 손인사만 나눠야 했던 김준수는 이날 마음 놓고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이는 예술의전당 설립 이후 김준수가 최초이자, 그에게만 허락된 ‘스페셜’한 시간이었다.
“여러분 덕에 마지막까지 잘 마칠 수 있었다”며 몇 번이고 감사를 표하는 그가 마지막 손을 흔들고 무대 뒤로 사라지자 그제야 관객들도 하나둘 객석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젠 감히 ‘한국 뮤지컬의 레전드’라 불러도 손색없는 배우 김준수 공연의 특별함은 이렇듯 커튼콜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의 커튼콜은 이제껏 한국 뮤지컬 무대에서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던 ‘신세계’이자 공연의 또 다른 재미를 더하는 요소가 되었다. 마치 커튼콜 자체가 한 편의 짧은 공연, 새로운 문화가 된 듯 했다. 4일 밤 뮤지컬 <드라큘라>의 김준수 회차 마지막 공연 커튼콜은 그래서 훨씬 더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겼다.
김윤정 withinnews@gmail.com
원문http://withinnews.co.kr/news/view.html?section=9&category=119&no=4242